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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카드·투자·연금 앱을 하나로 합쳤더니, 상담사만 바빠졌다 (1/2)

November 7, 20264 min read🌐 Only Korean available

예뻐졌는데, 쓸 수가 없다

요즘 한국 금융권 앱들을 보면 신기한 패턴이 하나 보인다. 보험, 카드, 투자, 연금처럼 계열사별로 따로 운영하던 앱을 하나로 통합하는 흐름이다. 표면적인 명분은 "고객 편의"지만, 실제로는 계열사를 넘나드는 고객 데이터를 한 곳에서 활용하기 쉽게 만들려는 목적이 더 커 보인다. 그리고 통합하는 김에 디자인도 싹 갈아엎는다. 요즘 해외 트렌디한 앱에서 보던 디자인 패턴 — 큼직한 카드형 레이아웃, 부드러운 애니메이션, 미니멀한 아이콘 — 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겉모습만 보면 확실히 좋아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예전에 보험 전용 앱에서 익숙하게 쓰던 세부 메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통합 앱의 전체 디자인 패턴을 유지하려다 보니, 특정 계열사에서만 쓰이던 깊숙한 기능들이 "전체 통일성"이라는 이유로 가지치기를 당한 거다. 나는 분명 예전에 썼던 그 메뉴를 다시 찾고 싶은데, 앱 어디를 눌러도 나오지 않는다.

검색해도 안 나오고, 결국 전화를 건다

메뉴를 못 찾으면 검색을 한다. 그런데 통합 앱의 검색 기능이 그 세부 기능까지 잡아주는 경우가 드물다. 몇 번을 눌러봐도 비슷한 결과만 나오고, 원하는 그 화면은 끝내 안 나온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다 — 고객센터에 전화를 건다.

그런데 전화를 걸어도 바로 상담사에게 연결되지 않는다. ARS가 먼저 "이건 앱에서도 하실 수 있어요"라며 앱 사용을 유도한다.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보통 2~3번은 반복된다. 그리고 이 유도 과정에서 버튼을 잘못 누르면 전화가 그대로 끊기고, 앱 링크가 담긴 문자 한 통만 날아온다. 방금까지 기다렸던 시간이 그대로 날아가는 거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간신히 상담사 연결 단계에 도달한다.

그 다음엔 대기다. 보통 30분이 기본값이다. 전화를 걸기까지의 과정만 해도 이미 지친 상태에서, 또 30분을 기다리다 보면 막상 상담사가 연결됐을 때는 화가 날 대로 난 상태가 된다. 상담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노릇이다. 본인이 만든 문제가 아닌데, 고객의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니까.

이 과정을 표로 정리하면

통합 전과 통합 후를 비교하면 이 변화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구분통합 전 (계열사별 개별 앱)통합 후 (하나의 앱)
디자인계열사마다 제각각, 오래된 느낌트렌디한 공통 디자인 패턴
세부 기능해당 업무에 특화된 메뉴 유지전체 통일성 때문에 일부 메뉴 삭제
원하는 기능 찾기그 업무 앱 안에서 바로 찾음검색해도 안 나오는 경우 많음
문제 해결 경로해당 계열사 고객센터로 바로 연결ARS 앱 유도 2~3회 → 상담사 연결
최종 체감투박하지만 할 일은 됨예쁘지만 결국 전화로 귀결

통합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다. 여러 앱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 자체는 나쁜 방향이 아니다. 로그인을 한 번만 하면 보험·카드·투자·연금을 한 화면에서 오가며 확인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편리하다. 문제는 통합의 방식이다. 제대로 된 통합이라면 공통으로 쓰는 뼈대(로그인, 알림, 결제 같은)는 하나로 묶되, 각 업무의 깊은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입 경로만 새로 설계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반대에 가깝다.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 시스템을 통일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그 아래 있던 기능들은 "일단 넣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하나둘 빠진다. 보여지는 부분부터 맞추고 실제 기능은 나중으로 미루는 순서가, 결국 사용자가 쓰던 메뉴부터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사라진 메뉴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

몇 번 이런 일을 겪으면서 보니, 사라지는 메뉴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1. 사용 빈도는 낮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꼭 필요한 기능 — 예를 들어 보험금 청구 서류를 특정 양식으로 다시 뽑는 메뉴처럼, 평소엔 안 쓰다가 막상 필요할 때는 절실한 기능
  2. 다른 업무에는 없는, 그 업무만의 전용 용어로 설계된 화면 — 통합 디자인 시스템의 공통 컴포넌트로 표현하기 애매해서 누락되는 경우
  3. 예전 UI에서 depth가 깊은 곳에 있던 설정값 — 통합하면서 메뉴 깊이 자체를 줄이는 과정에서 함께 잘려나가는 경우

이 세 가지 전부 "평소엔 안 보이지만 없으면 안 되는" 기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용 로그만 보고 우선순위를 매기면 당연히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기능들인데, 막상 그 기능이 필요한 사용자에게는 그 순간이 전부다.

비용은 늘었는데, 업무 특성은 사라졌다

더 답답한 건, 이런 통합 프로젝트에 회사가 들이는 비용이 결코 적지 않다는 거다. 계열사별로 흩어진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작업은 기술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상당한 공수가 든다. 그런데 그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고도, 정작 각 업무가 가진 고유한 특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보험 업무와 카드 업무, 투자 업무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의 구조 자체가 다른데, 그걸 하나의 디자인 시스템과 하나의 정보 구조로 욱여넣으려다 보니 결국 어느 쪽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물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돈은 돈대로 쓰고, 고객 경험은 오히려 후퇴하고,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상담사들이 떠안는다. 통합이라는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이 전화 한 통, 이 30분의 대기를 직접 겪어볼 일이 없을 테니, 이 악순환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의사결정권자가 보는 지표는 보통 "통합 완료율", "앱 하나로 몇 개 서비스를 합쳤는가" 같은 숫자다. 그 숫자는 프로젝트가 끝나는 순간 깔끔하게 채워지지만, 그 뒤로 매일 발생하는 상담 전화 한 통 한 통은 다른 부서의 KPI로 잡힌다. 통합을 설계한 사람과 그 결과로 쏟아지는 전화를 받는 사람이 서로 다른 조직, 다른 보고 라인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문제가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음 편에서는 이런 앱에 유독 많은 팝업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것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나온 문제라고 생각한다 — 고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기능이라는 점에서.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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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40-something PM returns to code. Learning, failing, and gro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