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나를 위한 게 아니다 — Anti-알고리즘 선언
알고리즘은 나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걸 느꼈다. 분명 나한테 맞춰준다는 알고리즘인데, 쓰면 쓸수록 오히려 삶이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편해지긴 했는데, 그 편함이 나를 어디론가 계속 몰아가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몇 가지 경험을 정리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알고리즘은 나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회사의 지표를 위해 일한다. 그리고 그 지표는 대부분 "내가 이 서비스에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다.
데이팅 앱: 매칭이 아니라 재방문
데이팅 앱을 써보면 이상한 패턴이 있다.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딱 붙여주지 않는다. 대신 나랑 조금씩 다른 사람, 애매하게 아쉬운 사람을 계속 보여준다. 처음엔 내 취향 설정이 잘못됐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앱 입장에서 진짜 잘 맞는 사람을 바로 매칭해주면, 나는 그 사람과 잘 돼서 앱을 지운다. 서비스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반면 애매하게 아쉬운 매칭을 계속 주면, 나는 "이번엔 다르겠지" 하면서 계속 앱을 켠다. 결국 데이팅 앱의 알고리즘이 최적화하는 목표는 "좋은 인연"이 아니라 "재방문율"이다. 내가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앱을 지우는 순간, 그 앱의 매출은 줄어든다. 내 문제가 해결되면 안 되는 게 데이팅 앱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SNS: 정보는 넘치는데, 소화는 안 된다
마케팅 공부를 좀 해볼까 싶어서 SNS 계정을 하나 새로 팠다. 며칠 마케팅·AI 관련 글 몇 개를 보고, 관련 계정 몇 개를 팔로우했더니, 피드가 완전히 그쪽으로만 채워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하루에 쏟아지는 마케팅·AI 관련 포스팅이 내가 도저히 다 읽을 수 없는 양이었다. 반도체는 지난 50년 동안 미친 듯이 발전했다. 그런데 내가 정보를 입력받는 장치는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눈이다. 처리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인간이라는 입출력 장치의 대역폭은 그대로다. 알고리즘은 이 불일치를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관심을 보인 주제라면, 내가 처리할 수 있든 없든 계속 밀어넣는다. 결과적으로 나는 정보를 "소비"한다기보다 정보에 "깔린다".
이별 후 넷플릭스: 슬픔을 더 슬프게
어떤 사람이 얼마 전 이별을 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켜면 이상하게 슬픈 연애 영화, 이별 관련 영상만 계속 떴다. 처음엔 신기해서 웃었는데, 곱씹어보니 무서운 일이었다. 알고리즘은 내가 최근에 본 콘텐츠, 검색어, 체류 시간을 보고 "지금 이 사람이 몰입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슬플 때 슬픈 콘텐츠에 몰입도가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그게 나한테 좋은 방향이 아니라는 거다. 이별했다고 슬픈 영화만 봐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웃긴 코미디도 보고, 무서운 호러 영화도 보면서 기분을 환기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알고리즘은 "지금 몰입도가 가장 높은 콘텐츠"만 계속 들이밀었다. 나를 회복시키는 게 아니라, 나를 그 감정 상태에 더 오래 붙잡아두는 쪽으로 작동했다. 체류 시간 관점에서는 슬픈 사람이 슬픈 콘텐츠를 오래 보는 게 "좋은 성과"이기 때문이다.
힙합 한 곡 들었다고 하루 종일 힙합
음악 스트리밍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힙합 한 곡을 들으면, 그날 추천 피드가 통째로 힙합으로 바뀐다. 나는 록도 듣고 싶고 재즈도 듣고 싶은 날이 있는데, 알고리즘은 "지금 이 사람은 힙합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단정하고 그쪽으로만 계속 밀어준다. 취향이라는 건 원래 여러 방향으로 흔들리는 건데, 알고리즘은 그 흔들림을 잡음으로 취급하고 하나의 축으로 수렴시키려 한다. 그게 반복되면 진짜로 내 취향 자체가 좁아진다. 원래 다양했던 취향이, 알고리즘이 계속 보여주는 것 위주로 굳어버리는 거다.
옛날 신문은 억지로 넓혀줬다
예전에는 신문이나 저녁 뉴스를 보면, 내가 관심 없는 분야의 기사도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왔다. 정치에 관심 없어도 1면 정치 기사 제목은 읽게 되고, 경제에 관심 없어도 환율 얘기는 한 번쯤 듣게 됐다. 억지로라도 기본적인 사회 지식, 상식의 폭이 넓어지는 구조였다. 지금은 다르다. 모바일 알고리즘은 내가 관심 있는 것만 계속 보여준다. 관심 없는 분야는 아예 피드에 뜨지도 않는다. 편리해 보이지만, 이건 내가 원래 자연스럽게 얻었을 "관심 밖 지식"을 얻을 기회 자체를 없애버리는 거다. 알고리즘 시대의 정보 노출 구조를 예전과 비교하면 이렇다.
| 구분 | 예전 (신문·TV 뉴스) | 지금 (알고리즘 피드) |
|---|---|---|
| 정보 선택 주체 | 편집자·기자 | 개인의 과거 행동 데이터 |
| 노출 범위 | 관심 없는 분야도 강제 노출 | 관심 있는 분야만 반복 노출 |
| 목표 | 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것 전달 | 체류 시간·클릭 극대화 |
| 결과 | 넓고 얕은 상식 형성 | 좁고 깊은 편향 형성 |
알고리즘이 만드는 폐해, 정리하면
지금까지 얘기한 사례들을 관통하는 패턴이 하나 있다.
- 데이팅 앱 — 좋은 매칭이 아니라 재방문을 최적화한다
- SNS 정보 과부하 — 인간이 처리 못 할 양의 정보를, 관심사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밀어넣는다
- 감정 기반 콘텐츠 추천 — 슬플 때 슬픈 콘텐츠를, 화날 때 화나는 콘텐츠를 더 보여줘서 감정을 증폭시킨다
- 취향의 편향 — 한 번의 선택을 전체 취향으로 단정하고, 다양성을 잡음으로 처리해 제거한다
네 가지 다 겉으로는 "개인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 최적화되는 지표는 나의 행복이나 성장이 아니라 체류 시간, 재방문율, 클릭률이다. 알고리즘 입장에서 나라는 사람이 다양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건 오히려 손해다. 다양하면 예측이 어려워지고, 예측이 어려우면 추천 정확도가 떨어지고, 정확도가 떨어지면 체류 시간이 준다.
인간은 병렬처리가 안 된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시간이다. 컴퓨터는 코어를 늘리면 여러 작업을 동시에 처리한다. 사람은 아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그중 집중해서 뭔가를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은 훨씬 적다. 그런데 알고리즘은 "이것도 배워야 한다", "이거 안 하면 뒤처진다"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마케팅 계정 하나 팠다고 마케팅·AI 정보만 하루 종일 쏟아지는 것처럼, 알고리즘은 내가 이미 관심을 보인 그 한 가지 주제에 내 남은 시간을 전부 쓰게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 시간에 다른 것도 배우고, 다른 감정도 느끼고, 다른 사람도 만나야 하는 몫이 있다. 알고리즘은 그 몫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 넣을 이유가 없다. 그건 알고리즘을 만든 회사의 지표에 들어있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테이프 앱과 ChainPlay를 만들었다
이 문제의식이 실제로 내가 카세트 뮤직 플레이어와 ChainPlay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카세트 앱은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곡이 아니라, 내가 직접 고른 곡만 테이프에 순서대로 담아서 스킵 없이 끝까지 듣는 경험을 다시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다. ChainPlay도 마찬가지다. 유튜브를 켜면 자동재생과 추천 영상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나는 그냥 내가 고른 영상 몇 개를 순서대로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 링크를 "체인"으로 엮어서, 정확히 내가 넣은 영상만 순서대로 재생되고 끝나면 멈추는 앱을 만들었다. 두 앱 다 기능만 놓고 보면 소박하다. 하지만 방향은 명확하다 —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대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고르고 만든 것을 듣고 보는 것. AI가 더 똑똑해질수록 오히려 이 방향이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AI가 무엇을 추천할지 결정하는 힘이 세질수록, 내가 무엇을 볼지 직접 결정하는 힘도 그만큼 의식적으로 지켜야 한다.
그래서, Anti-알고리즘
이 글의 결론은 "알고리즘을 다 끊자"가 아니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최소한 알고리즘이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 "나를 위한 최선"이 아니라 "회사를 위한 최적"이라는 걸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데이팅 앱이 자꾸 애매한 사람만 보여준다면 한 번쯤 의심해볼 것. SNS 피드가 한 가지 주제로만 채워진다면 의식적으로 다른 걸 검색해볼 것. 기분이 안 좋을 때일수록 알고리즘이 주는 콘텐츠 말고 내가 직접 고른 콘텐츠를 볼 것. 힙합만 나온다면 가끔은 직접 록을 검색해서 들을 것. 알고리즘은 똑똑하다. 하지만 그 똑똑함의 방향은 나를 향해 있지 않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다르게 알고리즘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backtodev
40대 PM, 다시 개발자로 돌아갑니다. 실패하고 배우며 성장하는 기록.